그렇게 구윤희를 알게 되고, 전화로 서로 이야기 하기를 몇 번.

2005년 01월의 어느 날.

그동안 충무로 한 구석의 2층 골방에서 프로젝트를 진행하다가 어느 주일에 예배를 드리러 대전으로 향했다. 교회에 들어갔을 때, 사라와 지나가는 윤희와 눈이 마주쳤다.

그런데 교회에 몇달에 한번 내려갔을 때 반갑게 인사하던 여느 때와는 달리,
그냥 살포시 웃으면서 고개만 끄떡이고는 화장실쪽으로 쏘옥 들어가버리는 것이 아닌가.

'부끄러움을 타는 것인가? 푸흐흐흣.'

1층 휴게실로 들어가 예배를 기다리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던 다른 분들과 인사를 나누고 지하 예배당으로 내려 가기 위해 나왔더니 마침 화장실에서 다시 나온 "변장한" 윤희를 보았다.

그 짧은 시간에 그렇게 화장한 것 같지도 않았는데 저렇게도 다르게 변장을 하다니. 솔직히 많이 놀랬다. 여자들은 전부 다 변장의 귀재라던데 그제서야 이해가 됐다.

예배를 마치고, 병재와 광열, 동욱이와 함께 차를 마시러 자리를 옮겼다. 당연히 구윤희씨도 한자리를 차지했다. (바늘 가는데 실이 빠질 수 없지. 앞으로 내가 바늘, 구윤희가 실을 하기로 그냥 내 맘대로 정했다. 푸히히히.)

차를 마시면서 후배들이 생각하는 연애, 이성에 대한 이야기들, 어려움을 겪으면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체험한 이야기들, 자신의 생각이 어떻게 변했는지에 대한 이야기들을 들었다. 세월이 흐름에 따라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는 청년들이 점점 멋진 남자로 성장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잠시 후, 광열이와 윤희의 '서로 갈구며 즐거워하기 놀이'가 시작되었다. 이상했다. 서로를 비방하면서 즐거워하다니. 아무튼 내용의 요지는 "미모와 지성을 겸비한 나를 광열이가 좋아한다" 라는 윤희의 주장에, "자아도취가 도를 넘어 병이 됐다" 는 광열이의 반박, "그러니까 니가 여자보는 눈이 없는 거야" 라는 윤희의 재반박으로 피(?)를 튀기는 혈전이었다.

며칠 간의 기도 후, 하나님께서 배우자로 주셨다는 확신이 있었기에 그저 '재미있네. 둘이서 잘 놀고 있구나' 라는 생각 외에는 없었지만, 예의상 광열이를 지그시 노려봤다.(물론 최대한 광열이가 내 눈빛을 오해해서 나를 좋아하게 되는 일이 없을만큼만 강렬하고 평범하게 쳐다보려고 신경을 썼다.)

시간이 흘러서 서울에 있던 조카들 문제집을 사려고 - 사실은 처음으로 윤희와 데이트를 할 겸 해서 - 자리에서 일어났다. "조카애들 문제집을 사야 하는데, 이 근처에 서점 어디 있는지 아는 사람?" 이라고 자연스럽게 물으면서. 역시 바늘 가는데 실이 따라와야지 않겠는가? 윤희가 바로 대답했다. "나도 서점에 가야 하는데, 같이 가요."(이 당시만 해도 우리는 서로 높임말을 썼다. 난 나이 어린 사람이라도 처음 보거나 정말 친해서 말 놓기로 합의 본 사람이 아니라면 높임말을 쓴다. 알고보면 나도 그렇게 막 나가는 사람은 아니다..-.ㅜ)

그렇게 우리 둘이는 최초의 데이트를 서점에서 했다.
조카들 문제집을 살 때 처음에는 옆에서 지켜보며 같이 고르는 척을 하더니 어느 새 저쪽에서 자기가 원하는 책을 뒤적거리고 있는 윤희. 뭐, 별로 기대는 안했지만 어이, 이봐. 좀 더 관심을 써주지?

책을 산 다음 우리는 둘이서만 까페에 갔다. 차를 마시면서 성장 과정과 가정 환경, 가족들, 자신의 성격이 어떤지, 기타 등등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눴다.(그때 들은 이야기들이 참 많았는데, 지난 몇달간 윤희가 보여주는 워낙에 다양휘황찬란한 모습때문에 기억나는게 하나도 없다..ㅜ.ㅜ)

한번 좋게 생각하면 모든 게 좋게 보이는 것은 하나님께서 배우자가 될 사람을 만났을 때 베푸시는 하나의 축복인가 보다. 당시 윤희가 스스로 문제점이라고 이야기했던 것들은 내게는 전혀 심각한 문제로 다가오지 않았다.

그때 들었던 생각은, "조용하고 차분하고 얌전하구나" 라는 참으로 위험한 것이었다. 왜냐하면 우리는 그때 서로 높임말을 쓰고, 조용한 분위기의 까페에서 차분한 톤으로 서로에 대해서 이야기를 진지하게 나누는 중이었으니까.

그리고 평소 '상대방이 스스로 어떤 점이 자신의 단점이라고 이야기하더라도, 그것을 그 사람의 단점으로 받아들이기 보다는 하나의 특성으로 생각하고 발전시킬 수 있는 가능성으로 여기자' 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당시 윤희가 말한 자신의 단점은 내게 별다른 의미가 없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원래 그날 서울 교회 친구인 "송진욱" 군의 생일 파티가 서울 종로에서 있었다. 그 시간에 맞춰 올라가기 위해 5시에 표를 예매했었는데 둘이 이야기를 나누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있다가 결국 차를 놓쳐버렸다. 진욱이한테 바로 전화를 했다.

"미안하다. 연애하다가 차를 놓쳐 버려서 참석 못하게 됐다."

그러자 수화기 너머로 당장에 심한 반발이 들려왔다.

결국 '맛있는 거 사주는' 것으로 일단락을 짓고는 윤희랑 저녁도 먹고, 이야기도 더 하다가 늦은 밤에 금호고속을 타고 서울로 향했다.

우리의 첫번째 데이트는 이렇게 진행되었고, 또 시간은 흘러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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