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 50원? 500원?

Diaries/연애일기 2009/11/17 09:41 용비

이제 정말 봄이 코 앞이다.

하루가 갈수록 밤과 낮의 길이 변화를 느낄 수 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봄이라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은 내 옷차림을 보면 된다.

조금만 추워도 내복에 오리털 파카로 중무장을 해야 하는 내가,
이제는 내복에 목티, 두툼한 청자켓으로 견딜 수 있기 때문이다.
아, 복장으로 보면 이전과 별 차이 없을래나?-.-

그래도 내가 입고 있는 옷 목록에서 오리털파카가 없다는 것은 역사적인 사건이 아닐 수 없다?

우리집 거실 창밖으로 내다보는 야경은 참으로 일품이다.


멀리 보이는 대전 월드컵 경기장의 불빛, 훤하게 트인 도로와 내려다보이는 집들에서 흘러나오는 조명들은 마음을 절로 평온하게 한다.


지금도 푸근하지만, 이제 조금 더 지나 주변의 모든 나무들이 푸르름을 덧입을 때가 오면 드디어 나의 계절이 돌아온다. 경배하라, 왕따교도들이여! 아하하하~~~


어쨌든 오늘의 이야기는 이렇게 점점 내 곁으로 다가오는 싱그러운 봄 내음과 함께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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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우리 마님은 몇가지 심각한 고민이 있다.


그중에 가장 큰 고민이라면 당연 석사 졸업 논문일 것이다.
그날도 마님은 석사 논문 주제를 정하기 위해서 인터넷을 통해 여기저기 돌아댕기고 있었다.

서재에서 컴퓨터로 열심히 검색하고 있는 마님을 뒤에서 가만히 지켜보고 있자니 심심했다. 고민하면서 이것저것 찾고 있는 사람 건드리면 혼날까봐 한참을 지켜보기만 했다. 점점 더 심심해졌다. 그래서 참다참다 뒤에서 덥썩 끌어 안았다. 역시나.... 상당히 귀찮아했다..(-.-)..

"이게 뭐하는 시츄에이션이야!"


작전을 바꿨다.
마님의 고민에 동참하는 시늉을 하고자 부드럽게 말했다. 실제로 부드러웠는지 아닌지는 모르지만.

"여보, 논문 때문에 고민 많지? 제목 정하는 게 쉽지 않은가벼. 내가 기도해줄께. 차근차근 같이 찾아보고 안되면 교수님한테 도움을 구하자."

여기서 잠깐만~. 우리가 서로 여보라고 부르는 것에 대해서 남들은 어머, 닭살이야. 니들이 벌써 결혼하고 나서 10년을 살았어? 노인네들이야? 기타 등등. 말들 참 많다. 그렇지만 난 닭살 좋아한다. 매주 치킨을 먹을만큼. 그리고 우린 둘이 있을 때만 저런 자연스러운(?) 호칭이 나온다. 음화홧!


물론 남들 앞에서는 말 못하지. 닭살스럽게 어떻게 많은 이들 앞에서 '여보'라고 부를 수 있단 말인가! 아직 우린 청춘이거늘! 안 그래 여보?

아무튼 작전이 성공했나보다.


'정말 너무너무 고민된다'는 표정으로 인터넷을 뒤적거리던 마님이 뒤돌아보면서 내 눈을 마주 봤다.

오, 좋아. 아싸, 드디어 관심을 나한테 돌렸어~

이제부터 뭔가 썸씽(?)이 이루어....질까?


한참을 우리는 눈싸움(?)을 했다. 그러더니 아내 얼굴이 서서히 나에게 다가오는 것이 아닌가!

'오옷~ 바로 이거거든!'

적당한 기대와 적당한 흐뭇함과 적당한 희망, 상상, 기타 등등.
'과연 이 다음 순간에는 어떤 사건(?)으로 진행될까?' 라는 생각에 내 가슴은 뛰었고, 내 머리는 달과 별을 보다 못해 우주를 여행하고 있었다. 그런데 시간은 참 늦게도 흘렀다. 정신 차리고 마님을 쳐다보니 아직까지 나를 뚫어져라 보고 있는게 아닌가.

'아니 내 얼굴이 뭔가 이상한가?'

'음, 아니야. 내가 너무 잘생겨서 그런걸꺼야.'
'에이. 쑥쓰러워하기는~ 얼른 다가 와라. 얼른!'

마님이 쳐다보고만 있자 갑자기 머릿속이 혼란스러워졌다.


한가지 만고불변의 진리가 있다.
기대가 크면 그만큼 실망도 크다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속타며 기다리고 있는 내 마음을 너무나도 잘 알았는지 마님은 웃으면서 귀여운 목소리로 멘트를 먼저 날렸다.

"자기, 콧구멍 너무 크다~"

'그렇게 부끄럽더냐~ 키키키. 우린 이제 부부야. 무슨 말이 필요해!'


머리속으로 별별 상상을 다 하던 나는 들리는 목소리에 우주에서 지구로 바로 귀환했다. 순식간에 귀환하긴 했는데...

방금 들은 말이 얼른 이해가 안됐다.

얘가 지금 무슨 소리 하는거야?
거기서 콧구멍 얘기가 왜 나와? 그런데 콧구멍이 어쨌다고?

순전히 우주 여행을 너무 오래한 탓이다.

내가 얼떨결에 해서는 안될 말로 대답을 한 것은.

"야아~ 그래도 50원짜리도 안 들어가!"

아, 이런 썩을. 이게 아닌데.
순간적으로 튀어 나오는 말이 왜 하필 저거냐?(-.ㅜ)
아무튼 우리 마님이랑 이야기를 하다보면,

뭔가 있어보이는 꿈은 개꿈이 되고,
심각한 얘기는 별거 아닌게 되고,

내가 진행하려던 이야기는 판타지 얘기가 되고,

평소의 나라면 상상도 못할만큼 나 자신이 이상해진다.

아니나다를까, 마님이 반격을 했다.

"에이~ 뻥치네. 500원짜리도 들어갈 것 같구만.

자 한번 확인해 보자. 돼지코 만들어봐."

윤희를 뒤에서 안고 난 후 조금 물러난 상황이었기 때문에 우리 사이는 상당히 가까웠다. 그래서 내 코를 돼지코로 만들려고 달려드는 윤희를 피해서 나는 결사적으로(?) 뒷걸음질쳐야 했다.

검지 손가락을 세운 상태로 내 콧구멍에 그 손가락을 쑤셔 넣기 위해서 달려드는 윤희. 윤희를 피하기 위해 앉아서 뒤로 물러나는 내 모습.


뭔가 러브러브한 모드를 상상했던 내가 또다시 바보가 되는 순간이었다. 도대체 왜 상황이 콧구멍을 찔러보고, 그걸 방비하는 상황으로 변질된 것일까?(-.-);

이 글을 읽고 아마도 오해하실 분들이 계실 것 같다.
'쟤네들 수준 참으로 유치하다. 결혼한 부부 맞어?' 라고.

우리 부부는 평소에 절대로 이렇게 놀지 않는다.
우리는 대부분 진지한 대화와 고민, 그리고 사람의 내면, 신앙, 철학, 상담, 기타 등등에 대해서 심도 깊게 이야기하면서 상대방에 대한 배려를 키워간다.

다만, 우리는 아주 가끔, 일주일에 한 3일 정도만 이렇게 논다.
음... 그런데 내가 서울에서 3일, 대전에서 아내와 함께 4일을 지낸다. 히잉. 아니아니. 순전히 봄이 다가오기 때문일 것이다. 행복한 봄을 보내기 위해서는 봄맞이 액땜을 해야하지 않겠는감?

그런데 사실.... 갑자기 확인해야할 일이 생각났다.
내 콧구멍이 그렇게 큰 걸까?(-.-)
거울보고 한번 재봐야할까 보다. 왜냐고?


음.. 나도 50원짜리가 내 콧구멍에 들어갈지 어떨지 상당히 궁금하다. 히히히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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