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황금 눈썹.

Diaries/연애일기 2009/11/17 09:42 용비

때는 2005년 06월 19일.


장소는 충남대학교 어느 이름 모를 건물 앞의 벤치.
요일은... 음.. 잘 모르겠네요.
제가 대전에 있을 때니까 토요일, 아니면 일요일이었겠죠.


제 기억에 그 날 날씨는 한 여름을 향해가는 계절에 맞게
참으로 종잡을 수 없는 날씨였습니다.


오전까지는 찬란하게 빛나는 저 태양을 구경할 수 있었고,
오후에는 우중충한 하늘에 내리는 빗물이
충남대 캠퍼스를 거닐던 우리를 가로막았습니다.


(비가 내리면서 햇빛 비치면 '사자가 장가간다'고 하죠?
응? 모르세요? 음. 그냥 그런 말이 있어요!)

아무튼 그날 우리는 사자도 몇마리 장가 보냈습니다.(-.-)


그날 예비 마님 구윤희씨와 완전무결한 마당쇠 저 용비는
순전히 카이스트보다는 충남대 교정이 더 넓다는 한가지 이유로
충남대학교를 어슬렁거렸습니다. 물론 팔짱도 꼈죠. 캬캬캬.


한참을 거닐다가 비가 와서 정문에서 주우욱 올라오면 있는
어느 건물을 부랴부랴 찾아들어가 건물 앞의 벤치에 앉았습니다.


서로 손을 잡고 마주보..고 싶었지만, 의지가 일렬로 있었던 관계로,
마주보지는 못하고 얼굴만 돌려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한참을 즐겁게, 신나게, 행복하게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어느 아주머니께서 비를 맞으면서 저 멀리서 다가오시더니

저희에게 물었습니다.


"이 건물에 돈 찾는 기계 없어요?"


당연히 제 고개는 예비 마님 윤희에게 돌아갔습니다.


"없어요."


그러자 아주머니. 무섭게 한마디 하셨습니다.


"아, 정말. 비도 오는데 여긴 무슨 대학교가 학교만 크고
그런 거 하나 없고 G랄이야. 아, 열받어."


열받은 사람은 아주머니인데,
분위기 썰렁해진 피해는 우리가 받았습니다.(-.-)


순간 순진했던 저는 어떻게 분위기를 반전시켜야할까 고민하면서
어찌할바를 몰라 그냥 내리는 비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얼굴 옆쪽이 뜨끈뜨끈했습니다.
옆으로 눈알을 굴려보니

윤희가 저를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야야야. 사람 볼 줄 아는구나. 내가 원래 좀 멋지지. 크흐흐흠.'


계속 쳐다보다가는 사시가 될까봐

얼른 다시 앞을 보면서 모른체 했습니다.


제 얼굴을 바라보던 윤희.
드디어 안되겠다 싶었는지

분위기를 쇄신하기 위해서 먼저 말을 꺼냅니다.


바로 그거거든요!

남자가 어색해할 때, 먼저 나서서 분위기를 부드럽게 바꾸는 거.
이거 아무나 할 수 있는게 아니잖아요. 음화화홧.
그래서 윤희는 아주 멋져요.


그런데......


세상 모든 남자들이여!
만약, 연애를 하거나 부부간에 대화를 할 때,
애인이나 마님이 아무말 없이

얼굴을 30초 이상 바라보고만 있을 때는
미리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합니다!!


윤희가 말했습니다.


"자기, 이제 보니 눈썹 정말 진하다."


그래서 저는 목에 힘줬습니다.


"으허허허허험. 원래 내 눈썹이 멋져!

내 눈썹을 보신 할아버지들께서는 관운장 눈썹이라고 했어."


정말, 그런 말씀을 하셨던 분들이 계셨습니다.
기러기 날아가는 모양의 짙은 눈썹을 보시고서는,

삼국지의 관우 눈썹같다고.

그런데 그게 윤희한테는

강아지가 살랑거리며 뀌는 방귀소리로 들렸나 봅니다.


대뜸 이러더군요.


"한번 밀어봐."


순간 충격을 받은 저는

그날 무슨 얘기를 했는지 다 까먹어버렸습니다.

그래서 지금 제 기억에 남은 것은 "눈썹을 밀어봐"라는
슈퍼캡짱울트라쇼크협박성 멘트 하나입니다.


순간 저는 눈썹이 없는 제 모습을 그려보고는

처절하게 방어를 시작했습니다.

그랬더니 윤희 마님.

팔로 제 머리를 감싸고는 "이리와~ 내가 밀어줄께~~".


참, 저는 우리 마님하고 놀면 뭔가 이상해지나 봅니다.
이성이 없어지고 별나라 갔다 온 것 같습니다.
하여튼 왜 하필 그 순간에 황금박쥐가 생각났었는지....

지금도 미스테리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괴성을 질렀습니다.


"안돼~!! 나의 이 황금눈썹을 밀다니.

이 무슨 거북이 하품하는 소리야!!"


음. 지금 와서 생각을 해보면...

조금 충격이.. 아니 많이 심하긴 했던 것 같습니다.(-.ㅜ)


그러자 우리 마님.


"오호~ 황금 눈썹? 이리와. 노란색으로 염색해줄께."


비가 내리고, 지나가는 사람없이 평화로운 오후에...
우리는 건물 앞의 의자에 앉아
한 사람의 머리를 밀고 당기는(?) 놀이를 했습니다. 커흑.


저를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제가 또 속눈썹이 아주 예술입니다. 음냐하하핫.
언젠가 심심하기도 하고, 궁금하기도 해서

제가 하나 뽑아서 길이를 재봤거든요?
아니 그런데 글쎄 그게 1.5cm를 넘잖아요?(O.O)


우리 마님은 제가 이쁜 걸 많이 질투합니다.(??)
어찌어찌 눈썹을 사수했더니,

이번에는 또 속눈썹을 뽑아보라는 겁니다.

속눈썹이 눈을 찔러 눈이 나빠졌다면서,
직접 하나하나 뽑으려고 하셨던 큰어머님 다음으로
제 눈썹을 직접 뽑으려고 한 사람 처음 봤습니다(ㅜ.ㅜ)


세상은 적당한 외모와 적당한 성격,
적당한 인품을 가진 사람이 평안하게 잘 사는 것일까요?


아, 하나님.
어째서 저를 이렇게 멋지게 태어나게 하셔서,
제 눈썹과 속눈썹에게 이런 위험을 주시나요? 흑흑흑.


뭐, 지금 우리 마님은 기억도 못할 겁니다만,
정말 그때 까딱 잘못했으면,
짙은 검은색, 기러기 모양의 관운장 눈썹이라고 칭송받았던
제 눈썹이 노래질뻔했습니다. 꺼이꺼이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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